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사명의 난 (문단 편집) ==== 이보국의 전횡 ==== 이보국은 당숙종이 태자 시절부터 따르던 [[환관]]으로, 분조를 세우고 영무에서 황위에 오르는 것을 주도하는 등의 공적을 세워 신임받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때에 이보국은 건녕왕 이담을 참소하여 죽게 만들었으며, 전중성의 장관으로 황제의 의복, 음식, 거주, 출행 등 일상적인 생활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였기에 고작해야 종 3품의 관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직으로 대우받은 전중감이란 직책을 역임하면서 '''군사관련 인사를 대부분 주관'''하며 그 세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여기에 당현종과 당숙종 사이의 미묘한 관계로 인해 이보국의 권세는 더욱 커진다. 사실 처음부터 당숙종은 당현종에게 어느정도 굽히고 들어갈 수밖에는 없었다. 왜냐하면 당숙종은 '''정식으로 황제위에 오른 것이 아닌''', 영무에서 자의적으로 즉위하고 당현종이 나중에야 이를 허락했기 때문이다. 즉, '''만약 당현종이 후에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바로 반역죄로 몰릴만한 행동'''이었던 것. 이로 인해 당숙종은 어떻게 해서든 장안을 탈환하고 당현종을 모셔오는데 노력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비록 상황으로 물러났지만 당현종의 영향력은 여전히 매우 컸다. 거기다 천보 연간 양귀비에게 빠져 이림보, 양국충 등에게 정치를 상당부분 위임할 정도로 무기력해졌던 당현종은 '''양귀비가 죽은 후 오히려 의욕이 살아난 게 아닌가''' 싶은 모습도 보여주었다. 이는 장안, 낙양을 수복한 다음 안녹산에게 붙었던 대신들을 처벌할 때에 확연히 나타난다. 이에 당숙종 및 당숙종 옹립파들은 '''당현종이 복귀해서 자신들을 처벌하려 들지 않을까''' 우려하기 시작한다. 과감한 정변을 통해 위황후나 태평공주를 제압했던 일이나 개원 말엽에 당숙종 이전에 태자로 내정되었던 황태자 및 그 형제들을 죽게 했던 [[당현종]]의 전적을 생각하면 이는 충분히 타당한 우려라 할 수 있다. 거기다 당현종이 장안으로 돌아온 후 흥경궁에 거주하면서 그 일대의 주민들과 가깝게 교류하면서 지내자[* 황급히 몸만 빼내 도망가는 상황에서도 백성들이 음식을 가져와서 끼니를 떼울 수 있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당현종에 대한 당시 당나라 백성들의 인식은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의외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불안감은 더더욱 커진다. 이때에 대한 자치통감 기록을 찾아보면 '실제로 흥경궁 내의 장경루에 당현종이 올라갈 때마다 지나가던 부로들이 왕왕 우러러보며 절을 하고 만세를 불렀으며, 상황은 항상 장경루 아래에 음식을 준비해놓고 이것을 그들에게 하사하였고, 또 일찍이 장군 곽영예 등을 불러서 장경루에 올라오도록 하여 연회를 베풀어 주었다.'고 한다. 흥경궁은 당현종이 왕이었던 시절에 머물면서 정변을 성사시켰던 장소라는 상징성을 지닌 곳인 데다 당현종에게 이런 호의적인 민심은 당숙종 및 당숙종 옹립파에게는 적지 않은 불안요소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보국은 이 틈을 노렸다. 당숙종으로 하여금 당현종을 유폐시키게끔 충동질하고, 이것을 자신의 큰 공적으로 삼아 권세를 굳히려 한 것이다. ||"상황께서 흥경궁에 계시면서, 날마다 외부인들과 교통하고 있으며 진현례와 [[고력사]]가 폐하께 불리하도록 꾀합니다. 지금 금군의 장사들은 모두 영무에서 공훈을 세운 사람들인데, 모두 몸을 뒤척이면서 불안해하고 있고, 신은 환히 깨닫고는 있으나 해결할 수는 없어서 감히 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황상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성황(현종)께서 자비롭고 어진데,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받아들이시겠는가?" 대답하였다. "상황께서는 진실로 이런 마음이 없으시겠지만, 그 여러 소인배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천하의 주인이 되시니, 마땅히 사직의 큰 계획을 만들어 아직 싹이 트지 않았을 때에 반란을 없애야지, 어찌 필부들의 효도만을 주창할 수 있겠습니까. 또 흥경궁은 황궁 밖 민가와 서로 섞여있고, 담이 얕아서 들여다보이므로 지존께서 거주하시기에 마땅한 곳이 아닙니다. 대궐 안은 깊고 경비도 삼엄한 데다가 받들어서 영접하여 그곳에 거주하시게 한다면 그곳과 무엇이 다르겠으며, 또 소인배들이 성청을 헷갈리게 하는 것을 막고 끊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면, 상황께서는 만세의 안녕을 누리게 되고, 폐하께서는 삼조의 즐거움이 생기니, 어찌 무슨 손해될 일이 있겠습니까?" - 자치통감|| 당숙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이보국의 권력은 황실까지 압박할 수 있을 정도로 강성했으며, 황제라면 모를까 상황인 당현종의 처지를 압박하는 데에 크게 무리가 없었다. 결국 이보국은 당현종의 호위병을 지속적으로 줄이고 자신의 영향력 하의 금군들을 움직여 압박하여 당현종의 측근들인 고력사, 왕승은, 진현례, 여선원, 옥진공주[* 당현종의 여동생으로 당현종이 가장 아끼던 동생이었다.] 등을 당현종에게서 떼어내 귀양보내거나 다른 지역에 거주하게 한 다음 당현종의 거주지를 서내의 감로전으로 옮기게 한다. 이는 사실상의 유폐나 다름없었다. 이에 형부상서 [[안진경]]을 필두로 하는 조정의 백관들이 이보국의 처사에 분노하며 상황(현종)을 문안하게 해달라 하자 이보국은 곧바로 안진경을 좌천시켜 봉주지역의 장사로 보내버려 입을 막는다. 당숙종 또한 이러한 상황을 좋아하지 않았고 이보국을 숙청해 정국을 되돌릴 생각도 한다. 그러나 이미 이보국은 '''황제인 당숙종마저도''' 함부로 터치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권세를 가졌으며, 특히 군대의 인사를 관장하면서 군권을 장악해버린데 대해 당숙종은 두려움마저 느끼고 이를 처내지 못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